u파워볼,파워볼실시간,실시간파워볼,1.97배당,파워볼전용사이트,파워볼게임사이트,홀짝게임,파워볼게임,파워볼엔트리,파워사다리,동행복권파워볼,하나파워볼,엔트리파워볼,파워볼사이트,키노사다리,키노사이트,엔트리사이트,파워볼하는법,파워볼분석,파워볼사다리,파워볼,나눔로또파워볼,네임드파워볼,앤트리파워볼,파워볼재테크,파워볼중계,연금복권당첨번호,라이브스코어,스포츠토토,토토사이트,네임드사이트,파워볼결과,돈버는사이트,엔트리게임,파워볼픽스터,사다리게임,파워볼픽,파워볼당첨번호,파워볼구매대행,파워볼게임실시간,파워볼패턴,실시간파워볼게임,파워볼그림,자이로볼,파워볼유출,베트맨토토,배트맨토토,연금복권,나눔로또,파워볼대중소,파워볼예측,파워볼양방,파워볼게임하는법,파워볼게임사이트,하나볼온라인,파워볼메이저사이트,파워볼무료픽,파워볼놀이터,파워볼사이트추천,파워볼주소
파워볼게임

홀짝게임 실시간파워볼 네임드파워볼 분석 게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빵바라 작성일21-01-11 15:19 조회8회 댓글0건

본문


sas.gif





사진=연합뉴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11일 코로나19 감염 확산 지표인 ‘감염재생산지수’가 1 이하로 떨어졌다며 다음주 신규 확진자 발생 규모를 600~700명 수준으로 예측했다.

정 본부장은 이날 오후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에서 방대본 정례브리핑을 열고 “감염재생산지수가 지난주(12월 27일~1월 2일) 1.0 정도로 떨어졌고, 이번주(1월 3일~9일) 추계한 것은 0.88이다”며 “1 이하로 감소해 고무적 상황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0.88에 해당하는 수치에 따라 1주 후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600명에서 700명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감염재생산지수는 1명의 확진자가 감염시키는 사람 수를 측정할 때 쓰인다. 감염재생산지수가 1이면 1명의 확진자가 최소 1명을 감염시킨다는 의미로, 1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감염 규모가 증가한다.파워볼게임

감염재생산지수가 1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0월 첫주(4~10일) 이후 12주만이다. 감염재생산지수는 2차 유행이 번지던 지난해 8월 마지막주(23~29일) 1.38에 머무르다가 이후 1 미만으로 떨어졌지만 10월 초를 지나며 다시 1 이상으로 상승했었다.

다만 정 본부장은 “중간에 대규모 집단발생이 생기거나 하는 그런 상황이 생길 경우 환자 수 변동폭이 상당히 크다”며 “재생산지수만 가지고 환자 수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또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추이가 완만한 감소세를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위험요인이 존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계절적 요인과 변이 바이러스, 취약시설 감염 지속 등이다.

그는 “연말연시 특별방역강화대책 및 수도권·비수도권 거리두기 조치에 따라서 코로나19에 대한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켜주실 것을 다시 한번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 네이버에서 국민일보를 구독하세요(클릭)
▶ 국민일보 홈페이지 바로가기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유기발광 소자 새롭게 개발…기존 OLED 대비 발광 효율 20% 향상

모델이 신규 OLED 소자가 적용된 77인치 차세대 OLED TV 패널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LG디스플레이]


[아이뉴스24 서민지 기자] LG디스플레이가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1'에서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패널을 공개하며 'OLED 대세화'에 앞장선다.

LG디스플레이는 11일(미국 현지 시간) 열린 'CES 2021'에서 차세대 OLED TV 패널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한 77인치 차세대 OLED TV 패널은 OLED 화질의 핵심인 유기발광 소자를 새롭게 개발해 화질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집약해 유기발광 소자의 근간을 이루는 유기물 재료를 고효율 물질로 개선했으며, 소자 속에서 실제 빛을 내는 발광 레이어를 1개 층 더 추가해 OLED의 발광 효율을 기존 대비 약 20% 향상했다. 발광 효율이 높아지면 휘도가 좋아져 더욱 선명한 색상의 화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OLED TV 패널은 8K 기준 약 3천300만 개 픽셀의 빛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제어하는 '픽셀 디밍'으로 무한대의 명암비를 구현한다. 이에 따라 밝은 곳은 더 밝게, 어두운 곳은 더 어둡게 표현해 또렷한 화면을 제공하며, 색의 기본이 되는 블랙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

OLED는 액정표시장치(LCD)와 달리 눈에 유해한 방출량이 적고, 화면이 매우 빠르게 깜짝이는 플리커 현상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LG디스플레이는 미국, 독일 등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으로부터 눈이 편한 디스플레이임을 인증받은 바 있다.

차세대 OLED TV 패널은 올해 출시되는 하이엔드급 모델부터 우선 적용되며,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는 OLED 라인업도 한층 강화한다. 올해부터는 기존 88·77·65·55·48인치에 83인치와 42인치 OLED TV 패널을 신규 양산한다. 향후 20~30인치대까지 중형급 라인업을 대폭 확대해 TV뿐만 아니라 게이밍, 모빌리티, 개인용 디스플레이 등으로 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 별도 스피커 없이 화면에서 소리가 나면서도 슬림한 디자인을 갖춘 필름 시네마틱 사운드 OLED(필름 CSO) 등 차별화된 제품도 잇따라 선보일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는 2013년 픽셀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 디스플레이인 OLED TV 패널을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이후 매년 기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55인치 풀HD 패널 1종에서 시작해 현재는 48인치 4K부터 88인치 8K까지 중대형을 아우르는 풀라인업을 갖췄다. 투명, 롤러블, 벤더블 등 OLED만이 가능한 폼팩터 혁신도 주도하고 있다.

OLED 시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OLED TV 패널 출하량은 2013년 20만 대에서 지난해 450만 대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700만~800만 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창호 LG디스플레이 TV사업부장 부사장은 "OLED의 진화를 통해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과 시장지배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지기자 jisseo@inews24.com


▶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재밌는 아이뉴스TV 영상보기 ▶아이뉴스24 바로가기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IT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지난해 배달대행 '부릉' 상위 5개 품목 살펴보니
한식 배달이 치킨보다 많아…디저트도 분식 앞질러
"코로나19로 집밥 횟수 늘고 카페 방문 대신 배달"

지난 4일 서울 중구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대행 '부릉' 소속 배달기사가 주문 받은 음식을 오토바이에 싣고 있다. 배달이 일상화되면서 부릉이 지난 한 해 배달한 품목 중 기존 인기 상품인 햄버거, 치킨뿐 아니라 한식, 디저트류 비중이 크게 늘었다. 뉴스1


코로나19는 배달을 일상의 더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였다. 햄버거, 치킨 등 특별한 식사 한 끼에 자주 사용하던 배달 서비스가 이젠 일상적인 집밥을 비롯해 카페에서 즐기던 커피 한 잔, 슬리퍼를 신고 나가 사던 편의점 물건까지 나르고 있다. '코로나 1년'을 지나는 사이 배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급증한 '한식' 배달 건수가 급기야 '치킨'을 넘어섰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왔다.

11일 식당과 배달원을 연결하는 배달대행 서비스 '부릉' 운영사 메쉬코리아가 지난해 배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식 배달이 가장 크게 늘었고 디저트류와 편의점 배송 역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릉' 배송 현황 인포그래픽. 메쉬코리아 제공


2018년과 2019년 부릉 배송 카테고리 1위와 2위는 버거와 치킨이었다. 한식과 분식, 디저트가 3~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1위 버거에 이어 2위로 한식이 치고 올라왔고, 3위인 치킨 다음으로 많이 시킨 음식이 디저트였다. 분식은 5위로 내려앉았다.

부릉 배송 건수 중 한식 비중은 2019년 10%에서 지난해 15%로 뛰었다. 디저트류는 같은 기간 8%에서 11%로 오르며 분식을 크게 앞질렀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영향이 컸다. 한식 배달 상품은 주로 공깃밥과 함께 국, 찌개, 탕, 반찬류 등이 메인이다. 집에서 식사하는 횟수가 늘어나 한식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카페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되면서 카페 상품 수요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편의점 배송의 약진이다. 2019년 대비 지난해 212% 급증했는데, 그 중에서도 야간 배송(밤 10시~오전 4시)이 434%나 늘었다. 전체 주문 중 야간 주문 비중은 12%를 기록했다. 심야시간대 먹을 것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편의점 배달 주문이 일상화된 것으로 보인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 주문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이 직접 고용한 배달기사도 있지만, 배달대행 서비스가 주문 중개 앱 배달을 처리하는 비중은 70~80%에 달한다는 게 업계 추정이다.

배달대행 업체들은 배송 추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주문 중개 앱뿐 아니라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부릉을 비롯해 '바로고' '생각대로' 등 업체들은 편의점들과 배달 제휴를 맺고 있다. 지난해 11월 배달에 뛰어든 스타벅스 역시 바로고와 손잡고 배달을 하고 있다.

유정범 메쉬코리아 대표는 "부릉 트럭을 활용하고 물류센터를 확보하는 등 넓은 권역에서 상품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배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급변한 유통과 물류 시장을 디지털 기술로 혁신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 [뉴잼] 놓치기 아까운 위클리 스토리
▶ [제로 웨이스트] 화장품 산 줄 알았더니 쓰레기를?
▶ 한국일보닷컴 바로가기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④]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이준태(李準泰, 1892~1950)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48년 2월이었고, 69년 뒤인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식민지 치하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조선혁명’의 과제를 민족해방혁명,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한 이유였다.?동행복권파워볼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 친미 반공 국가가 세워지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이들이 벌인 계급투쟁도,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도 이념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이 잊힌 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을 돌아본다. <기자말>

[장호철 기자]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①]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 비서 김재봉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②]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 권오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③] 제3차 조선공산당(안광천) 조직부장 김남수



▲ 이준태(사진)는 김재봉, 권오설과 함께 '풍산 트로이카'를 이루었으나 유일하게 서훈을 받지 못했다. 셋은 고비마다 핵심적 역할을 해 '풍산 트로이카'라 불리웠다.
ⓒ 국사편찬위원회


풍산 오미마을의 김재봉(1890~1944)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 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한 것은 조선노동대회의 대표로서였다. 비록, 경북 안동 와룡 출신의 안상길(1892~1958)과 함께 임정 선전과 자금모금을 하다가 붙잡혀 6개월 징역을 살긴 했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김재봉이, 내로라하는 조직의 대표들이 모인 극동 민족대회에 참석한 것은 일종의 '미스터리'(최백순, <조선공산당 평전>)였다.

대회 뒤, 치타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르며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에 입당한 김재봉이 조선공산당 창당의 밀명을 띠고 15개월 만에 귀국한 것도, 1925년에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 비서가 된 것도 그 미스터리의 연장선에 있었다. 경성공업전습소(경성고등공업학교의 전신, 뒤에 서울대 공대로 재조직)에서 공부한 뒤, 귀향해 강습소를 열었던 그가 국내의 대표적 노동단체인 조선노동대회 대표로 선임된 것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재봉의 극동 민족대회행의 열쇠, 이준태

김재봉의 전격적 등장에 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하는 자료는 찾기 어렵다. 최백순은 이러한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로 동향인 이준태를 제시한다. 풍산 우렁골(상리리) 출신으로 김재봉보다 2년 아래인 이준태는 김재봉과 경성공업전습소 동문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총독부 측량기사로 일하던 이준태는 김재봉과 함께 안상길을 만나 함께 일했지만, 구속은 피했다.

두 사람이 가입해 있던 조선노동대회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6장의 극동 민족대회 대표권을 배정받았는데, 그 마지막 한 장이 김재봉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최백순은 조선노동공제회나 조선노동대회와 달리 사회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쥔 노동 대중 조직을 꾸리려 했던 이준태에게 이 모든 결정의 열쇠가 있으리라 추정한 것이다.

1920년께 안상길·김재봉과 함께 임정 일을 함께하기 이전에 이미 이준태는 서울에서 그 존재를 뚜렷이 하고 있었다. 그는 1920년 7월에 <동아일보>에 발표한 '학우회 주최 순회 강연 변사 제군'이라는 글로 청년들에게 민족 사랑을 요구하였다. 이듬해에는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강연단을 조직하여 농촌으로 가라'는, 마치 1930년대의 '브나로드 운동'을 연상하게 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이준태는 1920년에 노동운동 조직인 조선노동대회와 조선노동공제회에 참여하면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최백순은 조선노동대회를 이끌던 안동 출신 사회주의자 노병희가 이준태와 '노동이라는 공통분모'로 알고 지냈을 것으로 보았다. 결국 갓 출옥한 김재봉에게 극동 민족대회행 대표권이 돌아가게 한 데는, 이준태의 역할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이준태는 노동운동에 입문하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1922년 1월, 김한(1887~1938, 2005 독립장), 신백우(1889~1962, 1990 애국장) 등과 서울에서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무산자동지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3월에는 무산자동지회와 신인동맹회가 통합한 무산자동맹회의 상무위원이 되어 기관지 <무산자> 발행에 힘을 보탰다.


▲ 이준태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 깊숙한 눈길로 응시하는 것은 역사일까.
ⓒ 국사편찬위원회


이 무렵 이준태는 김한·신백우 등이 활동하던 '조선공산당'(1925년 창당된 조선공산당과는 다름. '중립당')'에 가담하였다. 10월에는 조선노동공제회가 분화한 혁명적 성격의 노동단체 조선노동연맹회에도 참여했다. 1923년 3월 서울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청년단체 전조선청년당대회에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이처럼 이준태를 비롯한 국내 사회주의자들은 활동의 범주를 넓혀 가면서 사회주의 지향을 명확히 하며 조선공산당 창당의 기반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 결과, 1923년 5월, 김재봉이 15개월 만에 코민테른 국내부 책임자가 되어 러시아에서 귀환한 뒤, 곧바로 꼬르뷰로(코민테른 고려총국) 국내부가 조직될 수 있었다.

풍산소작인회와 조선공산당 2차당 차석 비서

그해 7월, 서울에서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투쟁을 전개하자 이준태는 윤덕병·김남수 등과 함께 '고무 여직공의 동맹파업 전말서'라는 선전문을 작성, 전국의 노동단체에 배포하였다. 이것이 추후 문제가 되어 그는 윤·김과 함께 출판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같은 달, 이준태는 사회주의 연구 목적의 '신(新)사상연구회'의 결성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신사상연구회는 이듬해 11월, 마르크스의 생일에서 따온 '화요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그 성격을 분명히 했다. 1923년 11월, 고향으로 내려온 이준태는 권오설 등과 함께 소작농뿐 아니라 자작농·중소 지주·진보적 청년 지식인들이 참여한 풍산소작인회를 조직했다.

1925년 1월에는 안동에서 화요회의 지회 격인 '화성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같은 달 조선공산당 창립대회를 위한 준비그룹이 발행하려는 사회주의 잡지 <화화(火花, 불꽃)>의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2월에는 화요회에서 사회운동의 조직적 통일과 기본방침을 토의하고자 개최한 전조선 민중운동자대회의 안동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당(조공)이 서울에서 창립되었을 때, 이준태는 안동에서 풍산소작인회와 화성회 활동에 주력하고 있었다. 8월에 풍산소작인회는 읍내에 풍산 소작인회관을 준공하고 그 낙성식을 성대하게 베풀었다. 5000여 명이 참석한 낙성식에서 이준태가 식사(式辭)를 맡았고, 안동청년연맹의 김남수가 축사를 했다. 식이 끝나고 수천 명 군중은 적색기와 악대를 앞세우고 시가지를 누볐다고 전한다.

서울에서 당이 창당되었는데도 이준태가 안동에 머문 것은 이러한 지역 활동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예비 간부를 중앙에서 분리'(김희곤)한 것으로도 추정된다. 그해 8월에 예천의 보수 단체 회원 수천 명이 형평사 예천 분사를 기습한, 이른바 '예천 사건'이 일어났다. 이준태는 이 사건에 대응하여 안동 12개 단체가 공동으로 꾸린 연합 회의의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1월에는 '도산서원 소작인 태형(笞刑) 사건'이 일어났다. 서원에서 1920년에 조선총독부가 폐지한 형벌을 소작인에게 가한 사건에 안동의 사회단체들은 경악했고, 이에 도산서원 철폐 운동으로 맞섰다. 풍산소작인회에서는 별도의 전문위원회를 구성했을 때 이준태 이름은 13명 명단의 맨 앞에 있었다.


▲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주역들인 김재봉(풍산 오미리), 이준태(풍산 상리리), 권오설(풍천 가곡리)을 모두 안동시 풍산 주변 출신이라 '풍산 트로이카'를 이루었다.
ⓒ 장호철


이준태가 다시 상경한 것은 11월 '조선공산당 제1차 검거사건'이 발생하면서였다. 조공 산하 고려공산청년회(공청) 책임 비서 박헌영 내외 등 당원 1백여 명이 검거된 조직의 위기에 김재봉이 이준태를 소환한 것이다. 김재봉은 강달영을 책임 비서로, 이준태·홍남표·이봉수·김철수 등 5명에게 조직을 맡기고 피신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듬해(1926) 2월, 강달영의 2차당에서 중앙집행위원 이준태는 비서부 차석과 당 교섭 대표자로 선임되었다. 2차당에는 동향 후배 권오설도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로 참여했는데, 이들은 2차당 조직 과정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4월에 순종이 사망하자, 공청의 권오설은 인산일에 민중항쟁을 기획하였지만, 사전에 기밀이 새어 조공은 당원 1백여 명이 잡히는 등 치명상을 입었다. 이것이 '조선공산당 제2차 검거사건'이다.

권오설에 이어 이준태도 일경에 체포되었다. 길고 지루한 공판이 이어지면서 이준태와 권오설 등 5명의 피고인은 일제 경찰을 '폭행과 학대, 직권 남용'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1928년 2월에 이준태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준태는 1930년 10월 출옥해 풍산 우렁골로 돌아왔다. 김재봉과 마찬가지로 일경의 감시로 나들이도 자유롭지 못해 그는 칩거 생활을 이어갔다. 풍산 읍내에 잡화점을 열었던 이준태는 해방이 되자, 셋째 아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서울로 갔다.

이후 이준태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게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1945년 12월 전국 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안동군 대표로 참가, 검사 위원으로 선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일가의 비극과 '풍산 트로이카' 중 유일한 미서훈

경기도 양주에 있는 이씨 문중 재실에서 머물다가 이준태가 귀향한 것은 6·25전쟁이 일어난 뒤였다. 그는 9월 국군의 북진을 따라 북상 길에 올랐다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경북의 산악지대를 지나다가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월북설도 있긴 하지만, 그가 평양에 나타났음을 전하는 자료는 전혀 없으니 믿기 어렵다.

그의 종적이 끊긴 뒤, 가족들에게 남은 것은 고초뿐이었다. 이준태 아내는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고, 맏아들은 1953년 1월 마을 근처에서 우파 세력에게 총살되었다. 둘째 아들은 서울에 살다 피난길에 올랐다가 한강 다리 폭파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풍산에서 잡화점을 경영하던 셋째는 부친과 관련한 주변의 신고로 곤욕을 치르다 집을 나갔다. 한 집안이 풍비박산난 것이다.

안동 출신의 사회주의자들,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의 주역들인 김재봉(애국장), 권오설(독립장), 김남수(애족장) 등은 2005년에 서훈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핵심적 역할을 해 '풍산 트로이카'를 이루며, 조선공산당 창건 전후 당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중요하게 활동했던 이준태만이 서훈에서 제외되었다.

사회주의자로 독립투쟁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조선공산당 경북도기관 책임 비서 안상길(1892~1958), 권오설의 동생으로 <해방일보> 주필과 사장을 지낸 권오직(1906~1953),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안기성(1898~?) 등은 해방 후 북으로 갔다. 그러나 북으로 가지도 않았고, 해방 정국에서 좌익 활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은 이준태가 이렇게 잊힌 존재가 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 경북 안동 풍산읍 상리리 364번지, 새로 단장한 이준태의 생가. 입구 울타리 게양대에 태극기가 무심히 휘날리고 있다. 집 오른쪽 측면에 따로 문을 달아 처마에 그의 호를 딴 ‘一烽齋(일봉재)’라는 편액을 걸어놓았다.
ⓒ 장호철



▲ 생가 오른쪽 칸의 일봉재 안에 모신 이준태의 흉상. 그 위에 낡은 태극기가 걸렸다. 낮과 밤에 두 차례나 찾았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 장호철


경북 안동 풍산읍 상리리 364번지 이준태 생가는 퇴락을 거듭하다가, 최근 손자며느리가 묵은 집의 대들보만 살리고 새로 단장한 집을 지키고 있다. 집 오른쪽 측면에 따로 문을 달아 처마에 그의 호를 딴 '一烽齋(일봉재)'라는 편액을 걸어놓았다. 일봉재에는 '항일 애국지사 일봉 이준태 상'이라 새긴 흉상이 놓였고, 그 위로 낡은 태극기가 걸려 있다.

태극기는 집 출입구 쪽 울타리 게양대에도 걸려 있다. 무심하게 휘날리는 깃발은 마치 풍산 트로이카 중 유일하게 서훈을 받지 못한 데 대한 후손들의 항의처럼 보인다.

청년 이준태가 열망한 혁명과는 무관하게 그는 이 땅을 떠나지 않았다고, 대한민국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무언의 시위처럼. 그러나 일봉재에 모신 흉상과 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 속 이준태의 깊숙한 눈길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있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 '시리즈'에서 연재하세요!
▶교사·학부모 필독서 《삶을 위한 수업》
▶오마이뉴스 취재 후원하기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세계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미지 원본보기

[TV리포트=이윤희 기자] ‘슈퍼맨이 돌아왔다’ 건후-하영이 만든 레전드 케미에 시청률도 응답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0일 방송된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 364회 ‘너는 나의 바다 넘치는 너의 사랑' 편은 전국 기준 분당 최고 시청률 12.1%를 기록했다.

이날 방송 최고의 1분은 시청자들의 심장을 제대로 저격한 건후-하영이의 만남이 차지했다. 서로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웃음을 만들어낸 아이들의 특별한 케미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하영이는 처음 만난 건후 오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광희 삼촌이 보여준 오르골을 건후와 함께 감상하다가 손을 덥석 잡으며 친근함을 표한 것.

건후는 오빠답게 동생 하영이를 잘 받아주며 동화 같은 그림을 완성했다. 광희 삼촌을 비롯한 현장 모두가 건후와 하영이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가운데, 경완 아빠는 혼자 당황하며 “너 뭐 하는 거야”라고 둘 사이에 개입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이 장면에서는 시청률이 12.1%까지 오르며 최고의 1분을 차지했다.

이와 함께 연우와 나은이, 건후와 벤틀리, 윌리엄과 연우, 하영이와 진우 등 어떤 조합이 뭉치든 시청자들에게 큰 힐링이 되는 회차였다.파워볼게임

이윤희 기자 yuni@tvreport.co.kr / 사진=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캡처


▶ SNS,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에게 무슨 일이?

▶ 연애, 혈액형, 심리테스트...이걸 믿어? 말어?

▶ TV 못봐서 궁금해?...한눈에 알 수 있는 방송리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