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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빵바라 작성일21-09-07 18:08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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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자가면역질환은 면역계가 자신의 조직을 공격해 생기는 병이다. 예를 들어 제1형 당뇨병은 췌장의 베타세포가 면역세포 공격으로 파괴돼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하게 된 상태로, 외부에서 인슐린을 주사하는 요법이 개발되기 전에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반면 암은 면역계가 내부 반란자(암세포)를 제압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이처럼 면역의 관점에서는 대척점에 있지만 둘은 비슷한 점이 많다. 먼저 이름으로, 특정한 병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공통 특징을 갖는 병을 아우른다. 암 종류는 100가지를 훌쩍 넘고 자가면역질환 목록도 계속 늘고 있어 현재 80가지가 넘는다. 특정 종류에서 잘 듣는 소위 ‘기적의 약’을 개발해도 암이나 자가면역질환이 정복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발병 요인이 다양한 것도 비슷하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환경적 요인은 운동이나 식단 등 생활 습관과 환경 오염이나 병원체 감염 등 외부 요인으로 이뤄져 있다. 노력하면 발병 위험성을 낮출 수는 있지만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의미다.

○ 암과 비슷한 점과 다른 점
물론 차이점도 있다. 자가면역질환은 여성의 발병률이 남성의 4배에 이른다. 물론 이는 전체적인 경향으로 개별 종류마다 비율이 다르다. 예를 들어 건선은 남녀 차이가 없고 하시모토갑상샘염(기능저하증)은 거의 여성이다. 반면 암은 남성의 발병률이 1.3배인 정도다. 아무튼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면역력이 높은 게 이런 경향의 배경이다. 다만 자가면역질환의 여성 치우침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가설이 나와 있다.

자가면역질환에서는 심리 영향이 크다는 것도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증상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원형탈모로 극도의 스트레스가 원인의 하나다. 원형탈모는 면역세포가 모낭을 공격해 머리카락이 빠지는 자가면역질환이다. 가장 흔한 자가면역질환인 건선도 중증은 피부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효과가 높다고 한다.동행복권파워볼

선진국에서 암 발생률은 정체된 반면 자가면역질환은 여전히 증가세라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이는 자가면역질환 목록이 늘어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심리 영향을 더 받는 게 원인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항핵항체라는 자가항체를 지닌(자가면역질환이 있거나 발병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다) 미국인의 비율은 1990년 무렵 11%였지만 2012년에는 16%로 늘어났다. 특히 청소년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 무렵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2007년 아이폰이 나왔다) 수면 부족과 SNS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가 최소한 부분적인 원인일 것이다.

수년 전 며칠째 겨드랑이가 가려워 하루는 확인해보니 몇 군데 홍반이 있었다. 아무래도 세균이나 진균 감염은 아닌 것 같아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가 건선이라며 상태가 나빠지면 바로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다행히 처방한 스테로이드 연고를 며칠 바르자 증상이 사라졌고 그 뒤 재발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면역계가 오작동한 것이고 다른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커진 것 같아 안 그래도 건강염려증인데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파워볼

○ 세 가지 발병 메커니즘

바이러스 감염이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는 메커니즘 세 가지가 알려져 있다. 위 왼쪽은 분자모방(molecular mimicry)으로 자가항원(노란색 삼각형)과 구조가 비슷한 항원(보라색 삼각형)을 지닌 바이러스를 항원제시세포(APC)가 먹고 분해해 항원을 내놓는다. 이를 인식한 자가반응성T세포(autoreactive T cell)가 활성화되면서 바이러스뿐 아니라 자가항원을 지닌 세포까지 공격한다. 위 오른쪽은 방관자 활성화(bystander activation)로 바이러스에 대항한 염증반응에서 파괴된 세포에서 나오는 자가항원을 항원제시세포가 먹고 표면에 내보내 방관자인 자가반응성T세포를 깨운다. 아래는 항원결정기 확산(epitope spreading)으로 만성 바이러스 감염에 조직이 손상되면서 다양한 유형의 자가항원이 배출되고 그에 따른 여러 자가반응성T세포가 활성화된다. 바이러스 제공파워볼게임
미국 과학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9월호는 자가면역질환을 특집으로 다뤘다. 이 가운데 ‘자가면역성은 어떻게 시작하나’라는 글은 자가면역질환에 대해 우리가 여전히 잘 모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 관점에 따르면 제1형 당뇨병에서 췌장은 오작동한 면역계에 억울하게 희생된 장기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췌장의 베타세포가 염증유발물질을 분비해 면역세포를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 오류를 일으킨 건 면역계가 아니라 표적 세포다. 실제 많은 자가면역질환이 표적 세포의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바이러스가 촉발하는 자가면역질환이 많다는 것도 뜻밖이었다. 지난 2015년 남미를 강타해 소두증 공포를 불러일으킨 지카바이러스 유행이 기억날 것이다. 당시 성인들 가운데 소수가 감염 후유증으로 길랭바레증후군을 앓는다는 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면역계가 신경계(뉴런의 축삭을 둘러싸고 있는 수초)를 공격해 염증과 마비가 일어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심하면 호흡근육이 마비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자가면역질환이다.파워볼엔트리

지카바이러스가 자가면역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으로 ‘분자모방’에서 비롯된 면역계의 착각이 제시됐다. 수초에 존재하는 자가항원과 구조가 비슷한 바이러스의 항원이 자가반응성T세포를 활성화해 바이러스뿐 아니라 수초까지 공격해 길랭바레증후군이 생겼다는 것이다. 과거 면역이론과는 달리 T세포 성숙 과정에서 자기 몸이 만드는 분자를 항원(자가항원)으로 하는 자가반응성T세포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극소수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당시 이런 얘기를 듣고 ‘참 운이 없는 경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식으로 자가면역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가운데는 성인 대다수가 감염된 적이 있는 독감바이러스나 헤르페스바이러스가 포함돼 있다. 게다가 설사 분자모방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바이러스 감염이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수년 사이 밝혀졌다.파워볼실시간

지난 2019년 국제학술지 ‘바이러스’에는 ‘바이러스와 자가면역성’이라는 제목의 리뷰가 실렸다. 카타르대 하디 야신 교수를 비롯한 저자들은 바이러스 감염이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는 세 가지 메커니즘을 소개했다. 분자모방은 그 가운데 하나로 헤르페스바이러스로 인한 기질각막염, 콕삭키바이러스가 유발하는 당뇨병과 신근염이 입증된 예다.


학술지 ‘사이언스’ 7월 30일자는 인슐린 발견 100주년을 맞아 제1형 당뇨병을 특집으로 다뤘다. 제1형 당뇨병은 면역계가 췌장의 베타세포를 파괴해 인슐린을 만들지 못하게 된 자가면역질환이다. 몇몇 바이러스 감염이 이 과정을 촉발한다는 증거가 있다. 사이언스 제공
다음으로 ‘방관자 활성화’ 메커니즘이 있다. 바이러스 침투로 과도한 염증반응이 일어나 세포가 파괴될 때 나오는 자가항원을 항원제시세포가 먹고 표면에 내보낸다. 방관자였던 자가반응성T세포가 이를 인식해 활성화되면 이 자가항원을 지닌 정상 세포를 공격해 파괴한다. 해당 자가항원과 비슷한 분자를 지니지 않은 바이러스도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이유다.

끝으로 중증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항원결정기 확산’ 메커니즘이 있다. 만성 바이러스 감염으로 조직이 장기간 손상되면서 다양한 유형의 자가항원이 배출되고 그에 따른 여러 자가반응성T세포가 활성화되면서 광범위한 자가면역반응이 유발된다.파워볼

○ 독감으로 기면증 생길 수도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캐치-22'를 쓴 조지프 헬러는 58세에 길랭바레증후군에 걸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위키피디아 제공
리뷰에서는 몇몇 바이러스를 예로 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가 익숙한 독감바이러스와 헤르페스바이러스가 눈에 띈다. 독감바이러스는 호흡기뿐 아니라 다른 장기로도 흘러갈 수 있는데 드물게 췌장에 이르기도 한다. 침투한 바이러스가 증식하며 파괴된 베타세포가 많을수록 인슐린 분비량이 줄어든다. 실제 2009년 유행한 H1N1 바이러스 감염으로 제1형 당뇨병이 생긴 사례가 여럿 보고됐다.

독감 감염 또는 백신 접종이 기면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낮에 갑자기 졸음에 빠져드는 질환인 기면증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게 뜻밖이겠지만, 면역계가 뇌 시상하부의 히포크레틴(분비)뉴런을 파괴한 결과다. 히포크레틴은 각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아직 자가항원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바이러스 또는 (바이러스 조각으로 만든) 백신에 분자모방인 항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헤르페스바이러스는 일단 감염하면 면역계 공격을 받아도 소탕되지 않고 인체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준동한다. 그런데 이때 면역계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가면역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헤르페스바이러스의 일종인 엡스타인바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인 전신홍반루프스(낭창)가 유발될 수 있다. 류머티스관절염과 쇼그렌증후군(눈물과 침이 마르는 증상) 환자에서도 엡스타인바바이러스에 대한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이 관찰됐다.파워볼실시간

헤르페스단순바이러스는 성인 다수가 보유하고 있고 활성화해도 입술 등에 물집이 생기는 정도라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눈에 침투하면 포진성기질각막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드물지만 뇌로 침투할 수도 있어 뇌염뿐 아니라 뉴런 손상으로 인한 다발성경화증 같은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헤르페스바이러스의 경우 분자모방뿐 아니라 방관자 활성화 등의 메커니즘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 코로나19 후유증 보고 잇따라


과도한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신호분자인 종양괴사인자(TNF-알파)를 없애는 항체약물인 인플릭시맴은 여러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최근 WHO는 인플릭시맴의 코로나19 치료제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플릭시맴이 TNF-알파(위 양쪽)과 결합한 상태를 보여준다. 위키피디아 제공
문득 코로나19의 후유증의 하나로 길랭바레증후군이 언급된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코로나19바이러스도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학술지 ‘류머티스학 최신 견해’ 3월호에는 ‘코로나19와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제목의 리뷰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 중환자의 증상은 자가면역질환의 증상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둘 다 여러 장기에 다양한 임상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면역계의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장기가 손상될 수 있다. 실제 일부 코로나19 중환자에서는 자가면역반응이 일어났음을 시사하는 자가항체도 발견됐다.

이러다 보니 자가면역질환 치료제가 중증 코로나19에 효과를 보인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기존 약물 세 가지에 대해 코로나19 치료제 가능성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말라리아 치료제 알테수네이트, 항암제 이매티닙(글리벡)과 함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인플릭시맵이 포함돼 있다.

코로나19가 완치된 뒤에 후유증으로 자가면역질환이 나타나는 임상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길랭바레증후군을 비롯해 빈혈의 일종인 한랭응집소증, 자가면역용혈빈혈도 유발됐다. 심지어 전신홍반루프스가 생겼다는 논문도 나왔다. 저자들은 앞으로 더 많은 자가면역질환이 보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며칠 전 오른쪽 윗입술 주변 피부가 약간 가렵고 작열감이 느껴져 보니 작은 물집이 보인다. 단순포진(헤르페스)이다. 이미 밤 10시에 가까운 시간이라 평소라면 다음날 동네약국에 갔겠지만, 이날은 옷을 주섬주섬 입고 시내까지 나가서 항바이러스 연고를 구매해 바르고 잤다. 이래서 식자우환(識字憂患),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파워볼실시간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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